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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디지털 시대의 감각 과잉은 어떻게 패션으로 구현되는가 - 하이퍼팝과 하이퍼룩

Editorial

by heenzi 2025. 5. 13.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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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스파 'Savage' 콘셉트 티저 ⓒ SM엔터테인먼트

 

낯설고 과장된, 튀는 옷들이 있다. 누구를 위한 것도, 어디에 맞춘 것도 아니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장식들. 이 새로운 감각은 어디에서 비롯됐을까. 음악 장르 '하이퍼팝(Hyperpop)'은 어느새 디지털 시대의 불안정한 정서와 정체성을 시각적으로 재현하는 하나의 패션 미학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 미학은 예쁨이나 유행을 겨루는 것이 아니라 감각의 과잉과 경계의 해체를 말한다. 하이퍼팝의 사운드가 그러하듯 이 패션 역시 혼란스럽고 복잡하지만, 단 하나의 메시지를 전한다.
"우리는 경계를 거부한다."


하이퍼팝은 무엇인가 – 반(反)구조·반(反)주류의 미학

▲ 레코드 레이블 PC Music 로고 ⓒ PC Music
▲ Charli xcx 'VROOM VROOM' 콘셉트 사진 ⓒ iMDb

 

하이퍼팝은 2010년대 중반, 영국의 레코드 레이블 'PC Music'을 중심으로 태동했다. 이후 소피(SOPHIE), 찰리 xcx(Charli xcx)와 같은 아티스트를 통해 확장되면서, 대중음악의 규칙을 비틀고 경계를 유희하거나 전복하는 방식으로 진화했다. 빠른 BPM, 비정형 구조, 깨진 신스, 과장된 보컬 이펙트가 특징이다. 미국 음악 매거진 <American Songwriter> 의 칼럼니스트 조 비타글리아노(Joe Vitagliano)는 하이퍼팝을 "톱질하듯 날카로운 신스, 오토튠 보컬, 글리치 기반 타악기, 후기 자본주의 디스토피아 특유의 분위기"라 설명했다.

디지털 매거진 <Vice>의 저널리스트 엘리 에니스(Eli Enis)는 하이퍼팝을 "장르의 규칙을 따르기보다는, 장르 자체를 초월하려는 공동의 정신"이라 평한다. 실제로 하이퍼팝의 기반이 된 'PC Music'의 창립자 A.G. 쿡(A.G. Cook)은 "나는 본능적으로 너무 확고하게 특정 장르에 속한다고 느껴지는 것에 끌리지 않는다. 그래서 늘 나만의 방식으로 실험하고 연구하게 된다"고 말하며, 장르의 경계를 밀어붙이고 실험음악과 팝 사이의 중간지대를 의도적으로 피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는 극단적이고 모순적인 감각과 음악이 언제든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긴장감을 중시하면서, 하이퍼팝에 실험성과 예측 불가능성을 적극 도입하고 장르 구분의 무의미함을 음악적으로 드러내고자 했다.

이전까진 음악 팬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하나의 경향에 불과했던 하이퍼팝은, 2020년 팬데믹과 함께 TikTok, 유튜브 쇼츠 같은 초 단위 콘텐츠 플랫폼을 타고 대중화되며 전환점을 맞는다. 정신없는 템포, 파편화된 비트, 맥시멀리즘적 사운드는 더 강한 자극을 원하는 청자들에게 도파민처럼 작용했고, 불협화음과 기괴함, 파괴성은 하이퍼팝을 '스마트폰 시대의 록'이라 불리게 했다. 지금 이 시대를 가장 날것 그대로 입은 음악, 그것이 하이퍼팝이다.

 

하이퍼팝은 어떻게 패션이 되는가


이러한 하이퍼팝의 정신은 케이팝을 만나 음악을 넘어 패션이라는 시각 언어로 확장됐다. 감각 흐름에 민감한 케이팝 신(scene)은 하이퍼팝을 빠르게 흡수했고, 하이퍼팝은 음악·퍼포먼스·스타일링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구조 속에서 더욱 자극적이고 극단적으로 진화했다. 과장된 실루엣, 시각적 자극을 노린 소재, 미래지향적인 디자인, 디지털 필터를 연상시키는 메이크업까지. 이 모든 요소는 하이퍼팝의 '감각 과잉'을 몸으로 입는 방식이다.

필자가 감히 '하이퍼룩(Hyperlook)'이라 명명하고자 하는 이 스타일은, 엄밀히 말해 정해진 하나의 룩이나 장르가 아니다. 감각의 과잉, 장르의 혼성, 정체성의 유동성과 같은 하이퍼팝의 정신이 스타일링으로 번역된 결과다.

 


K-POP 속 하이퍼룩의 구현

▶ 디지털 전사, 에스파(aespa)

 

▲ 에스파 'Savage' 콘셉트 티저 ⓒ SM엔터테인먼트
▲ 에스파 'Savage' 콘셉트 티저 ⓒ SM엔터테인먼트

 

하이퍼팝의 파괴력을 가장 먼저 강렬하게 구현한 그룹은 단연 에스파(aespa)다. 이들은 '전통적인 아이돌의 성장 서사보다는 '세계관'과 '경험 제공'에 더 집중(『빌보드 코리아 케이팝 아티스트 인명사전』)'하며, 데뷔 당시부터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아바타(æ) 세계관을 구축해왔다. '현실 세계'의 멤버와 '가상 세계'의 아바타가 디지털 공간을 매개로 교감하고 조력하는 이 설정은, 곧 인간과 비인간, 실체와 데이터 간의 경계를 해체하는 상상력이자, 디지털 시대의 정체성 실험이다.

 

▲ 에스파 'Savage' 콘셉트 티저 ⓒ SM엔터테인먼트
▲ 에스파 'Savage' 콘셉트 티저 ⓒ SM엔터테인먼트

 

에스파의 세계관은 스타일링에서도 선명하게 드러난다. 얼굴 전체를 감싸는 조형물과 배경에 배치된 오브제는 모두 디지털로 설계된 형태로, 마치 가상 세계가 현실로 침투한 듯한 착시를 만든다.

여기에 더해, 볼드한 액세서리, 과장된 네일, 의상의 텍스타일과 충돌하는 프린지와 인조 퍼 같은 장식 요소는 하이퍼팝 특유의 감각적 과잉과 아이러니를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또, 매트릭스 텍스트 패턴이 프린트된 재킷을 착용한 것은 디지털 코드를 몸에 입히는 시도로 해석할 수 있다. 이처럼 에스파의 하이퍼룩은 단순한 스타일링을 넘어, 하이퍼팝이 지향하는 경계 해체와 정체성의 유동성을 시각화한 디지털 선언문처럼 보인다.

 

 

▶ Everything's gnarly, 캣츠아이(KATSEYE)

▲ 캣츠아이 'Gnarly' 콘셉트 이미지 ⓒ 하이브 유니버셜

 

에스파 이후 가장 강한 반응을 끌어낸 곡은 캣츠아이(KATSEYE)의 'Gnarly'다. 공개 직후, 국내외 팬들 사이에서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렸고 댓글창에는 "horrible song", "idk how to feel about this song but it's good"과 같은 반응이 줄을 이었다. 처음엔 낯설고 당황스럽지만 어느새 중독되어 버리는 감각, 이것이야말로 하이퍼팝이 지닌 묘한 매력이다.

 

▲ 캣츠아이 ⓒ 하이브 유니버셜

 

캣츠아이의 룩은 에스파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얌전하고 예쁜' 인상일 수 있다. 하지만 그 안에는 캣츠아이만의 과감함과 자유로움이 분명하게 존재한다. 이들의 스타일은 하이퍼팝이 지닌 '경계 허물기' 정신을 보다 일상적인 문법 위에서 구현한 사례다. Y2K의 키치함, 시스루와 란제리 스타일의 노출, 다채로운 장식 요소들이 낯선 방식으로 조합되며 관습적인 스타일링 규칙을 뒤흔든다.

브라탑 위에 퍼 아우터를 입고 디지털 프린트 롱슬리브에 란제리를 겹쳐 입으며, 문부츠와 샛노란 가발, 애니멀 프린트를 함께 배치하는 방식은 전형적인 패션 문법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감각의 결합이다. 또, 메탈릭한 질감과 실버 톤 원단은 공상과학적 미감을 불러일으키며 디지털 시대의 감각을 의복이라는 매체로 번역해 낸다.

 

▲ 캣츠아이의 네일 스타일링 ⓒ 유튜브 STUDIO CHOOM / Mnet K-POP / MBCkpop

 

무엇보다 눈에 띄는 건 손톱이다. 'Gnarly' 스타일링에서 손톱은 단순한 꾸밈의 영역을 넘어서, 하나의 조형물이자 퍼포먼스 주체로 기능한다. 장난감, 피규어, 구슬 등 다양한 오브제를 과감히 얹은 네일은 실용성과는 무관하게 오직 시각적 충격과 감각의 밀도를 표현하는 데 집중한다. 이로써 손톱은 몸의 일부가 아닌 무대 위 또 하나의 모델이자 감각의 캔버스가 되어 스스로를 퍼포먼스화한다.

이처럼 유행과 비유행, 고급과 키치, 일상성과 비일상성이 겹겹이 섞인 캣츠아이의 하이퍼룩은 하이퍼팝이 추구하는 아이러니, 경계 해체, 유희성을 고스란히 옷으로 구현한다. 캣츠아이가 보여준 것처럼 트렌드를 흡수하면서도 장르화되기를 거부하는 이 모순적 태도는, 하이퍼팝이 지닌 시대적 감각의 가장 진솔한 반영이다.


우리 시대의 시각적 진단서, 하이퍼룩


하이퍼팝은 디지털 시대의 불안정한 감각을 가장 직관적으로 드러낸 음악이고, 하이퍼룩은 그 감각을 몸으로 입는 하나의 언어다. 그것은 단지 '예쁜' 옷이나 '잘 차려입은' 스타일이 아니라, 감정의 과잉과 정체성의 유동성, 디지털 피로를 정면에서 드러내는 시각적 증언이다. 하이퍼룩은 과잉된 감각을 감추기보다 드러냄으로써 지금 이 시대를 입는 하나의 방식이 된다.

전형적인 미적 완결성으로부터의 탈피. 바로 그 지점에서 하이퍼룩은 시작된다. 불균형하고 과장된, 때로는 우스꽝스럽기까지 한 이 룩은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의 혼돈과 모순을 담아낼 수 있는 유효한 그릇이다. 무엇이 멋이고 어디까지가 스타일이며 정체성은 어떻게 허용되는가. 이 모든 질문을 동시에 품은 채, 하이퍼룩은 그 자체로 하나의 문제 제기이자 감각의 해석이 된다.

결국 이건 스타일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는 무엇을 입느냐보다 어떤 감각을 감당하며 살아가는지를 묻는 시대를 통과하고 있다. 하이퍼룩은 그 질문에 응답하는 방식이다. 어쩌면, 지금 가장 솔직하게.